2026 소장품전 《POMA Collection: Steel Sculpture》
전시기간 2026-01-27 ~ 2026-05-17
전시장소 포항시립미술관 2전시실
전시작품 조각 17점
참여작가 정현, 엄태정, 심문섭, 최종태, 오종욱, 류인, 최만린, 구본주, 야니스 쿠넬리스,, 최병상, 이점원, 조성묵
관람시간 동절기(11-3월) : 오전 10시-오후 6시, 하절기(4-10월) : 오전 10시-오후 7시 *월요일 휴관
관람료 무료
우리는 모두 한 번 태어나고, 살아가고, 사라진다. 너무 당연해서 더 말할 것도 없어 보이지만, 이 단순한 사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끝없는 질문이 따라온다.
“나는 언제부터 ‘나’였을까?”, “지금의 나는 무엇들로 이루어져 있을까?”, “죽음 이후에도 이어지는 것이 있을까?”
이번 전시는 이러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금속과 조각으로 이루어진 작품들을 하나의 몸, 한 인물의 생애에 비유하여, 1장 「물질에서 생명으로, 그 전환의 문턱」, 2장 「한 인물의 생애 , 관계와 책임의 시간」, 3장 「밤과 새벽 사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생」이라는 세 구역으로 구성했다. 관람자는 전시장 안을 걸으며, 물질이 몸이 되고, 몸이 삶을 겪고, 삶이 사라진 뒤에도 완전히 소멸되지 않는 시간을 따라가게 된다.
1장 – 물질에서 생명으로, 그 전환의 문턱
첫 번째 장은 아직 이름도, 얼굴도, 서사도 없는 상태로 시작한다. 사용된 뒤 버려진 철근, 서로 다른 굵기와 길이, 뒤틀린 흔적을 지닌 금속들이 모여 뼈대와 골격을 떠올리게 하는 형상으로 다시 세워진다. 한때 다른 구조물을 떠받쳤다가 폐기된 철근이 다시 일어서는 장면은, 시련의 흔적을 안고도 다시 서는 몸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인체 구조를 완벽히 재현하기보다는 왜곡하고 비워 둔 추상·반추상 조각들은, 아직 굳지 않은 얼굴, 어떤 표정이든 될 수 있는 얼굴을 닮아 있다. 재료의 물성과 상처, 가공의 흔적은 “이제 막 생명으로 건너가려는 무언가”의 떨림을 전한다. 이 구역에서 금속은 단지 차가운 물질이 아니라, 태아기의 뼈와 살, 태동과 함께 형체를 갖추기 시작하는 몸에 비유된다.
이 장은 결국, 언제부터 ‘존재’가 생명으로 불릴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관람자는 작품들 앞에서, 어느 순간 물질이 더 이상 사물이 아니라 ‘누군가’처럼 보이기 시작하는 그 경계를 마주하게 된다.
2장 – 한 인물의 생애, 관계와 책임의 시간
두 번째 장에 이르면 조각들은 훨씬 더 분명한 ‘몸’의 비례와 자세를 드러낸다. 이 구역은 한 인물의 생애 전체, 그 가운데 몸 위에 쌓여 온 관계와 책임, 기쁨과 상처의 시간을 다룬다.
한 몸이 지나온 시간이 이 구역에서 차례 없이 포개진다. 처음에는 두 팔에 안겨 잠들고, 부모의 손을 잡고 걷고, 누군가가 건네는 말을 따라 외우며 세상을 배워 간다. 그러다 어느 순간, 더 이상 아이가 아니라는 말을 들으며 스스로를 책임져야 하는 자리에 밀려 나와, 낯선 자리에서 서툰 몸으로 버티는 날들이 이어진다. 일이 자꾸만 어긋나고,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시간을 통과한 뒤에야, 또 다른 사람과 함께 살 집을 꾸리고, 나를 바라보던 눈빛을 이제는 내가 다른 존재를 향해 건네게 된다.
그 안에서 잠깐씩 찾아오는 평온과 웃음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야 하고, 가장 나중까지 버티게 만드는 무게도 함께 커져 간다. 기쁨과 불안, 기대와 두려움이 뒤섞인 채, 내려놓을 수 없는 책임 때문에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 나가는 한 사람의 시간이, 이곳의 형상들 속에서 조용히 되풀이되고 있다.
2장의 작품들은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사람으로 산다”는 일이 무엇인지를 조용히 묻는다. 관람자는 부모의 품에서 시작된 작은 몸이 배우고 일하고 사랑하며, 누군가를 책임지는 어깨로 자라나는 과정, 그 속에서 축적된 피로와 기쁨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결국 이 구역은 각자의 삶을 지탱해 온 ‘몸’이라는 매개를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장면이다.
3장 – 밤과 새벽 사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생
세 번째 장은 죽음 이후의 시간을 상상하는 구역이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죽음은 단절과 소멸이 아니라, 밤과 새벽 사이 어딘가에 머무는 긴 쉼표에 가깝다. 종소리를 떠올리게 하는 형상, 이쪽과 저쪽을 나누는 문과 문턱, 얼굴 없는 인물의 실루엣과 메신저 같은 존재들은, 서로 다른 종교와 민간 신앙, 영적 상상력이 뒤섞인 한국적 죽음의 이미지를 환기한다.
이 장은 특정한 교리나 답을 제시하는 대신, “죽음 이후에도 남는 것들”에 집중한다. 몸이 사라진 자리에도 계속 머무르는 기억, 이름이 지워진 뒤에도 남는 흔적, 남은 이들의 마음에 오래 남는 감정과 기운. 작품들은 이 보이지 않는 것들을 몸 대신 구조와 상징, 빈자리와 울림으로 드러낸다. 관람자는 작품 사이를 걸으며, 떠나보낸 누군가의 얼굴, 언젠가 맞이하게 될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겹쳐보게 된다.
이 구역의 시간은 빛과 어둠, 상실과 위로, 끝과 시작이 동시에 감지되는 ‘경계의 시간’이다. 전시는 죽음 이후를 비극이나 구원 어느 한쪽으로 고정하지 않고, 각자가 믿고 싶은 것, 붙잡고 싶은 것을 조용히 떠올릴 수 있도록 여백을 남겨 둔다.
맺음말 – 한 몸의 생애를 따라 걷는 전시
이 전시는 조각을 통해 한 몸의 생애를 따라 걷는 경험을 제안한다. 금속과 조각으로 이루어진 형상들이 태동기의 뼈과 얼굴, 관계와 책임이 쌓인 몸, 사라진 뒤에도 남아 있는 여운에 비유되면서, 관람자의 시간과 겹쳐지는 장면을 만든다. 각 작품은 그 자체로 완결된 답이라기보다, “이것이 한 사람의 생애라면 어디쯤일까?”를 상상하게 만드는 하나의 장면으로 배치되어 있다.
전시를 따라 걷는 동안, 누군가는 자신의 성장과 가족을, 누군가는 노동과 소진을, 또 누군가는 떠나보낸 이들의 기억을 떠올릴 것이다. 작품들은 그렇게, 물질과 몸,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매개가 된다. 관람을 마친 뒤에도 마음속에 남는 몇가지 질문들
“나에게 ‘지금 여기 살아 있다’는 감각은 어떤 모습인가.”
“내 몸 위에는 어떤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있는가.”
“누군가가 사라진 뒤에도, 계속 이어지는 것이 있는가.”
이 질문들을 품고 천천히 걷는 일, 그 시간이야말로 이 전시가 관람자에게 건네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경험일 것이다.